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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사태를 미국에서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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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8일 뉴욕타임즈 1면에 일본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날은 전날 발표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보도되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좁은 1면을 비집고 도요타 기사가 들어온 것을 보고 도요타의 리콜 사태가 만만치 않은 파장을 낳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기사 내용은 세계 1위 업체였던 미국의 GM을 제치기 위한 도요타의 성장 우선주의 전략이 품질에서 문제를 초래하며 도요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날 뉴욕타임즈의 경제 섹션 톱기사는 애플이 야심차게 공개한 아이패드였지만, 그 아래 더 많은 면적으로 등장한 기사는 미국의 자동차 경쟁사들이 도요타를 상대로 거센 공격성 판촉전을 시작했다는 분석 기사였다. 그후 며칠간 방송에서도 도요타의 자동차 리콜에 대한 기사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Sudden Acceleration” “sticky accelerator”로 표현된 도요타 논란이 계속됐고, 달을 넘긴 오늘(2월 8일)도 어김없이 신문과 방송 어딘가에선 도요타 보도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28일 뉴욕 타임즈 경제면에 실렸던 도요타 관련 분석 기사에선 한국 자동차 업체와 관련해서 한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 “Analysts expected Honda, Hyundai and Ford to benefit most.” 혼다와 현대, 포드가 반사 이익을 누릴 것 같다는 단 한 줄의 글귀였다.

도요타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우리가 얼마나 이득을 볼 지는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에 문외한인 나로선 더욱 그렇다. 듀크대에서 이 글을 쓰면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들을 세어 보니 21대중 7대가 도요타다. 미국의 대중차로 자리잡은 캠리도 보이고 최근 리콜에 들어간 첨단 기종인 도요타 프리우스도 서 있다. 미국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도요타의 지배력과 그동안 도요타 제품에 대해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충성도나, 도요타가 전계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면서 금고에 쌓아 놓았다는 현금 동원력을 생각해 보면 도요타는 왠만한 파장에도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거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 내에선-주로 우익 보수 언론들에서- 도요타 사태를 놓고 미국의 ‘일본 때리기’라는 볼맨 반발이 나오기도 한다는데 사실 그런 의문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도요타 사태는 오바마 행정부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정해 전력 투구했던 의료보험 개혁안이 지난달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로 의회 통과에 먹구름이 끼는 와중에 튀어 나왔다. 도요타의 리콜은 언론에 공개된 대로 미국 교통 당국이 일본에 관련 인사까지 보내며 직접 개입해 이뤄졌다.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하는 민심에 호소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던 오바마 행정부가 집권 1년을 맞아 ‘개혁이 제대로 진행되는 게 없다’는 여론의 실망감에 직면한 가운데 도요타 사태가 불거졌다고 해석하면 견강부회일까.

도요타 사태가 사전에 계획된 일본 때리기인지 아니면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등장했지만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국내 민심을 다독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인지는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에게 도요타 사태가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의 기회 만은 아닌 것 같다.

당장은 도요타 추격에 나선 국내 자동차 업계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눈 앞의 이익만 있는게 아니다. 우선 한미 FTA가 떠오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미 대선 후보 시절 한미 FTA를 언급하며 “badly flawed”라고 비판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국내에서 팔리는 미국의 자동차 대수가 문제였다. 당시는 자동차 업계와 노조, 근로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만큼 집권한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면 오산이다. 집권한 지금 정치적 곤경을 해소하기 위해 한미 FTA의 자동차 재협상을 화두로 들고 나올 가능성을 과연 완전 배제할 수 있겠는가. 자고로 어떤 나라이건 대외 정책은 국내 정치 상황에 크게 좌우돼 왔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민주당 행정부는 공화당 행정부에 비해 통상 문제에 대해 강경했고 상대적으로 보호무역 경향이 강했다. 그간 미국 학계에선 일본의 경제적 성장을 놓고 “미국의 안보 우산속 일본이 실리를 챙겼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도 많다. 거창하게 학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곳 듀크대의 국제정치학 강의실에서 이런 논거를 제시하는 교수를 만날 수 있다. 물론 한국은 일본 만큼 미국에게 중요한 상대는 아니다. 경제 지표로 따져서 미국의 자국 업체를 보호하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면 1차 타겟은 중국과 일본이 되는게 맞다.

이번 학기 듣고 있는 정치지리학 강의 시간에 교수가 갑자기 “중국과 한국,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의 지명이 무엇인지 아는가”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머릿 속에서 복잡해지는데 교수가 의도했던 것은 동해의 국제적 지명 표기였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한 백인 학생이 답했는데 “Sea of Japan”이었다. 강의실에서 “East Sea”를 거론하는 미국 학생들은 한 명도 없었다. 교수가 문답을 이어갔다. “하지만 주미 한국 대사관에선 그렇게 얘기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있는 내 친구에 따르면 한국 대사관에서 항의 전화가 계속된다.” 그의 짧은 언급을 듣고 있으니 ‘우리 외교관들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안심이 들면서도 ‘East Sea’보다는 ‘Sea of Japan’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자괴감이 들어 마음이 착잡했다.

일본이 두드려 맞는 이유는 일본이 더 중요한 상대인데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 있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도에서 밀렸을 뿐 일본과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 2차 타겟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분야를 경제 바깥으로 확대하면 사실 우리는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강력한 협조를 요구받는 상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프간 파병 요구가 대표적이다. 주한미군 주둔으로 안보를 보장받았으니 미국의 전세계 평화 정책에 한국 역시 적극 동참하라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지난 부시 행정부에서 한국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이라크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나라였다. 모두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보냈다. 당시 참여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부시 행정부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주한미군 차출과 자이툰 파병을 레버리지로 이용했다면 이명박 정부 역시 대북 정책에서 미국의 공개적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미국의 파병 요청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한미 FTA와 같은 광의의 경제 분야에서 얻을 실리를 의식해서라도 파병과 같은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도요타 사태를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위기 의식이 드는데 국내의 인터넷 여론은 ‘호기를 맞았다’는 식의 기대감만 부추긴다고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