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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수를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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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라면 이번엔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연수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선배들을 만나면 너나없이
이런 한 마디를 던졌다. 연수가 얼마 안 남은 지금, 나도 정확히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이 시간은 거의
모든 것이 한 번만 주어진 선택이고, 되돌아 보니 ‘안 가 본 길’에 대한 후회가 남을 수 밖에 없기 때문
이다. 그래서 정리해 봤다. 다시 연수를 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1. 집은 가능한 한 직접 보고 정한다.


많은 연수자들이 떠나기 전 믿을 만한 현지 지인에게 계약 대행을 부탁한다. 나 역시 아파트 홈페이지에
서 찍은 집을 현지 사는 이가 눈으로 확인해 주고 오케이 사인을 내려 계약했다. 하지만 결론만 말하면
실패였다. 그 집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집을 고르는 관점이 달랐던 탓이다. 지인은 깨끗하고 편의시설
이 갖춰지면서 위치가 좋은 것에 큰 점수를 줬다면, 나는 아이들이 뛰어 놀 공간, 렌트비에 걸맞는 면적,
채광 등을 따지는 쪽이었다. 그래서 집의 부족함이 느껴질 때마다 ‘역시 집은 사는 사람이 골라야 해’라
는 생각을 했다.


‘집 구하기가 힘들면 어떡하지?’ ‘당장 어디에서 살아?’라며 불안할 필요가 없다. 실제 주변에서 사흘
만에 집을 계약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또 집을 구할 때까지 호텔이 아니라도 Airbnb.com이나 Vibro.
com처럼 집 공유 사이트에 들어가면 장기 투숙이 가능한 집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계약은 11개월 만 하는 게 이득이다. 보통 꽉 일년을 채우기 전에 귀국하기도 하거
니와 그 직전 여행까지 겹치면 한 달 렌트비가 아깝게 되기 때문이다. 11개월 이후 추가로 살아야 할 땐
‘일일 렌트비’를 산정해 그만큼의 비용만 내고 살 수도 있다.
  
2. 여행은 일년 짜리 농사다.


‘짐 풀자마자 여행 계획부터 세워라’ 라는 조언은 쉬운 말이 아니었다. 정착하느라 기운은 떨어지니 만
사가 귀찮았다. 그래도 떠나기는 해야겠기에 지난해 오자마자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하지만 어른도
아이도 준비가 덜 돼 감흥보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후 여행 코스의 스텝이 꼬
였다. 보통 샌프란시스코와 요세미티를 엮어 가고 솔뱅 같은 근교를 주말 나들이로 간다는데 샌프란시스
코만 찍고 나니 다음 코스 잡기가 쉽지 않았다. 팜스프링, 샌디에고처럼 LA에서 하루 나들이로 갈 수 있
는 곳을 일주일 방학 때 다녀온 뒤 정작 긴 여행에는 결석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여행에 계획이 필요한
건 여행지마다 추천 시즌이 있기 때문. 데스밸리는 늦겨울, 요세미티는 봄, 옐로스톤과 캐나다 밴프는
여름, 멕시코는 겨울, 이런 식으로 시기를 맞추자면 여행을 일년 농사처럼 여겨야 한다. 가고 싶은 곳과
일정을 맞춰 한 번에 큰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3. 연수 초기 쇼핑은 선택과 집중이다.


해외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일년을 채 쓰지 않고 사는 물건이기에 무조건 싼 것부터 찾기 쉽다. 내 경우
그래서 실패한 품목이 그릇이다. 당연히 두고 갈 것을 생각하고 저렴한 것을 구입했지만 얼마 전 귀국 때
가져갈 요량으로 새 것으로 다시 들였다. 그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물건을 샀을 텐데 이중으
로 돈을 들인 셈이다. 한국과의 가격 차이가 큰 매트리스, 침구 등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품목이다.  이
경우 이사의 형태(해외 이사, 드림백, 택배 등)도 미리 결정하는 게 좋다.  


4. 한국 문제집, 옷과 신발은 최소한만


한국서 낑낑대고 챙겨 온 수학 문제집은 볼 때마다 후회막급이다. 왠지 시간이 많을 것 같고 한국과 진도
차이가 가장 큰 과목이라 일부러 챙겨온 것인데 막상 4분의 1도 끝내지 못했다. 당장 급한 불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한국처럼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학교의 방과 후 수업이나 운동, 플레이 데이트 등으로 오후
를 보내기 때문에 생각만큼 여유가 생기지 않아서다. 기본 연산문제집 서너 권만 있어도 충분하고, 심화
가 필요할 경우 싱가포르 수학 문제집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옷과 신발 역시 최소한만 가져오는 게 낫다. 워낙 저렴한 물건들이 많고 아이들조차 현지 친구들이 입는
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어한다.


5. 대형 공연은 미리미리 알아봐야


도착해 좀 정신을 차리고 나면 세계적인 공연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LA의 경우 LA필이 대표적이었다.
한데 문제는 표다. 할인티켓 사이트에서 운 좋게 구매할 수도 있지만 대개 공연을 코앞에 두고는 가장
고가의 좌석만이 남아 있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건너온 주요 뮤지컬도 비슷한 사정이었다. 그래서
연수지가 결정된 뒤라면 공연 정보는 한번쯤 미리 챙겨보길 권한다. 가령 판타지스 씨어터 같은 할리우
드 주요 극장들은 일년 앞서 라인업을 공개한다. 야외공연장인 LA 할리우드 볼 역시 2월에 그 해 여름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5월부터 티켓 판매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