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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되, 다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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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되, 다르지 않은...>

이기홍(동아일보기자,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대학에서 연수중)

“네가 본 것만 갖고 일반화하면 위험해.”
지난해 8월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했을때 현지에 거주하는 선배들이 들려준충고입니다. 1, 2년의 짧은 미국 생활 경험을 가지고 “미국은 이렇더라…”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아는’ 사람들이 보면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관찰기에 불과할때가 많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사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사람이든 무한대의 단면을 가진 다각형의 입체이므로, 자기가 보고 경험한 건 정말 한 단면에 불과한 경우가 비일비재할것”이라는 점에서 저도 그같은 충고에 동의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아직 미국 생활 8개월도 안된 초보자. “미국이 어떻더라”고 얘기할 자신은 정말 없습니다. 그저 제 눈에 비친 몇몇 조각들을 모아볼 밖에요. 그래도 조각들을 꿰어줄 뭔가 Keyword가 필요할 것 같아 ‘한국과 다른 점, 같은 점’이라는 줄기로 세 조각을 모아 봤습니다.

:좌-우파간의 대립: Ⅰ. “저 경직되고 독선적인 좌파들에게 미국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좌파들은 조국의 장래 보다는 눈 앞의 것에만 집착하는 근시안들 아닙니까. 미국이 다시 독선적인 좌파의 손아귀에 빠져들지 않도록 건전한 보수파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환호와 박수…. 지난해 9월말. 워싱턴DC 조지타운대학의 한 강의실. 밤8시가 넘은 늦은 시간인데도 대형 강의실을 거의 가득 메운 20대 초반 대학생들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이날 모임은 조지타운대학의 학부생 동아리인 ‘Young Republicans`(공화당 지지 대학생 모임)의 신입회원 환영회 및 신입생 기수 대표를 뽑는 자리. 100여명의 참석자중 유색인종은 옵서버로 참석한 저를 포함해 서너명. 거의 대부분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백인 학생들이었습니다. 6대 4정도로 남학생이 많아 보이더군요.
신입생 대표 경선에 나선 10여명이 차례로 왜 공화당 지지자가 됐는지, 앞으로 이 모임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 등의 포부, 공약을 쏟아냈습니다. 신입생 답게 재치와 위트가 넘치더군요. 하지만 좌파와 민주당에 대해 언급할 때는 비난의 수위가 상당히 높더군요. 짙은 적개심이 배어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눈에 비친 좌파(우파의 상대개념, 즉 liberalist와 Progressionist를 통
칭하는 용어로 이해하면 될 것 같더군요)는 미국을 허수아비처럼 약화시켜서 9·11이라는 비극을 불러 온 장본인들, 국가경쟁력 보다는 당장의 실업수당 증액에만 골몰하는, 책임감 보다는 대책 없이 떼쓰고 헐뜯기에만 골몰하는 근시안들에 다름아닌 것 같았습니다. 모임이 끝난뒤 2,3학년생들인 동아리 간부들을 잠깐 만났습니다. “그동안 대학캠퍼스에서는 좌파들의 목소리만 드셌다. 그들은 동아리 행사, 시위 참석 등 대학생활의 상당시간을 정치 활동에 투자한다. 액티브하다. 반면 우리 우파들은 생각은 굴뚝같아도 굳이 자기 개인 생활이 아닌데에 시간을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때문에 좌파는 자신들이 대다수인 것처럼 설쳐댈 수 밖에. 하지만 이제는 좌파만이 대학의 전부인 것처럼 떠드는 걸 참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있다.”

Ⅱ.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시(조지 w 부시 대통령)를 지지할수 없습니다. 부시 정권은 극우적 종교적 신념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이라크 침공도 결국은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겁니다. 미국 민주주의는 부시에 의해 역사상 최악의 상태로 후퇴했습니다.”
올초 한 국제 경제 관련 강의시간. 계기가 뭐였을까. 잠깐 강의의 소재가 현실 정치로 이어진 순간, 그때까지 점잖게 강의하던 교수의 입에서 갑자기 강경하고 극렬한 단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이 교수가 부시행정부와 보수 언론, 보수적 씽크탱크들, 이라크전쟁 지지자들에 대해 갖는 적개감은 대단하더군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이슬람에 대한 종교 보복’, ‘석유를 뺏기 위한 더러운 전쟁’ 등이 이 교수가 이라크전쟁을 보는 시각이었습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부시행정부가 내세운 전쟁의 명분은 ‘이라크를 중동 민주화의 모델로 만들어 민주주의를 확산시킴으로써 중동지역에서 테러세력을 약화시키고, 대량살상 무기 위협을 뿌리뽑는다….’는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 교수는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공식적인 전쟁 명분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비판하는게 아니라, 그 명분 이면에 숨어 있다고 스스로 단정지은 ‘검은 속셈’을 비판의 타겟으로 삼더군요.

Ⅲ. “Weekly Standard를 읽는다고요? 정말 안됐네요.” Weekly Standard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논리를 대변하는 정치평론 주간지입니다. 어느날 한 미국인 친구에게 Weekly Standard를 구독하고 있다고-제 연수주제가 미국 신보수주의자 연구이므로-말하자 그는 참으로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제가 이어 “Weekly Standard가 이라크전쟁 등 국제정치 관련 기사와 칼럼은 극우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객관성과 정연한 논리를 잃지 않는데 비해 민주당 경선후보들을 비판할때는 감정적인 어휘와 논리의 비약이 잦아지더라”고 하자, 그는반색을 하며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현 정권하에서 엄청난 이권을 챙기고있다. 정권재창출이 되야만 이권을 계속 챙길 수 있으니까 발 벗고 나선 것”이라고 강조하더군요.”
‘Weekly Standard가 민주당 후보를 집중 비판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권 유지라는 비도덕적이고 사적인 욕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민주당이 집권하면 미국의 국익에 해로울 것이라는 정치적 견해 때문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던져 보려다 참았습니다.

사상과 논조의 다름, 지지 정파의 다름을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로 보기 보다는, “너는 비도덕적이고 더러운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격하시켜서 보고, 상대방 논리의 진수(眞髓)를 타겟으로 삼아 논리로 진검승부를 벌이기 보다는 상대방을 도덕적으로 격하시켜서 공격하는 건 우리 사회만의 현상일까? 저는 가끔 이 문제에 있어 미국과 한국사회의 차이가 질적 차이인지, 아니면 양적 차이에 불과한지를 곰곰 생각해봅니다.
물론 이념, 세대간 견해 차이로 인해 일상에서 미국 사람들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총량은 우리 사회와는 비교도 안되겠지요. 제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목격했던,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인터넷 신문 사이트를 통해 접하게 되는 지난 몇년간 한국사회의 ‘(총칼 만 안든) 정신적 내전(內戰)’에 비한다면 여기는 비교도 안 될만큼 덜 노골적이고 욕설이나 비방도 별로 안들리는 것 같으니까요.(제가 경험한 한도내에선)
Young Republicans의 모임에서도, 진보파 교수의 강의에서도, 미국인 친구와의만남에서도 “비록 당신과 생각은 정반대일지언정 그들(우파에겐 좌파, 좌파에겐 우파)도 그들 나름의 프리즘을 통해 미국의 앞날을 고민하고, 미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그냥 참았습니다.
영어로 유창하게 전달할 자신이 없어서였는지, 말해봤자 부질 없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인지….

:교통법규 준수?:
미국에 와서 처음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워싱턴DC 인근은 동네에서 몇 분만 벗어나면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펼쳐지는데, 55마일(시속 88키로) 제한속도 지역에서 55마일은 커녕 65마일 이하로 달리는 차도 거의 없더군요. 제한속도 65마일(104키로) 구간에선 80마일(128키로)을 넘는 차들이 부지기수예요. 만약 제한 속도로 달리면 뒷차가 금방 꽁무니까지 따라붙더군요. 미국은 규정과 질서를 철저히 지키는 사회라고 들었는데….단속카메라가 없어서 그런가? 단속 안한다고 안 지켜? 그거 말고 뭔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미국 사람들에게 물어도 설득력 있는 변명은 들리지 않더군요. 대부분 “그렇지요?”라며 수긍하더군요. 한 나이든 미국 아저씨는 “운전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갈수록 드물어진다”며 젊은이들의 운전 행태가 한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한 친구는 “월말에는 고속도로에서도 단속을 하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귀뜸해주고요.
반면 주택가 도로(Drive 또는 Boulevard등의 이름이 붙은)는 제한 속도가 35마일인 곳이 많은데, 때때로 단속을 하더군요. 경찰차가 도로 골목 어귀에 숨어있다가 딱지를 떼는데 많이들 걸리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동네 도로에서는 심하게 과속하는 차가 많지 않아요. 물론 보행자 우선, 신호 없는 교차로에서의 양보 등은 철저히 이뤄지더군요.

:특별한 영어 교습?:
저는 강의와는 별도로 조지타운대학 부설 영어교육기관인 EFL에서 몇 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제 개인 돈을 내고 듣는 과외의 수업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90분씩 수업하는데, 16주 수강료가 1400달러 가량 됩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수강료지만 신청을 한 이유는 뭔가 특별한 교습법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 였습니다. 서울에서 다녔던 종로의 영어학원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수강료가 비싼 만큼….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곳의 1시간 수업에 비해 종로 조그만 학원의 영어회회반-영어 Native speaker가 주 5일 매일 1시간씩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달 8만원 안팎이지요-에서 보냈던 1시간이 더 효율적이고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한국 학원의 영어회화반은 보통 10명 이내고, 매월 중순만 되면 결석생이 많아 서너명이 모여 앉아 영어로 수다를 떨 수 있는데 비해, 여기는 한 클래스에 16명 가량이나 되니 말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교습법이라는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물론 제가 경험했던 종로일대 학원의 미국인 강사들에 비해 이 곳 강사들이 학생들의 발음이나 억양을 지적해주는데 있어 훨씬 정확하고, 학생 관리도 노련하게하는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를 영어교습의 질적 차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한편 워싱턴DC 근교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버지니아주 Fairfax County에는 한국인 아이들을 상대로 영어 과외 학원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한 미국인 아주머니(교사 출신이라고 하더군요)가 시작했는데 점점 학생이 늘어나 현재는 작은 교습실이 여러 개 있고 (최근에 확장공사까지 했더군요), 여러 명의 미국인 선생들이 고용돼 있습니다.(대부분 현직 교사들이 방과후 파트타임으로 일하더군요)
1대 1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시간당 40달러입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비용이지만 현재 학생(초등~고등학생)이 70명이 넘고 거의 대부분이 한국 아이들입니다. 멀리 메릴랜드주에서 오는 아이도 있다고 합니다.
주재원 아이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조기 유학 온 아이들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 영어 배우러 유학와서 서울의 개인교습 학원 비슷한 곳에서 영어과외를 받고 있는겁니다. 사실 제 큰 아이도 여기 보내고 있는데, 숙제도 많이 내주고, 회화 문법
독해를 골고루 다루더군요. 이곳과 한국 학원의 경쟁력 차이가 질적 차이든, 양적 차이든간에 저는 이제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라해서 우리가 갖지못한 특별한 영어교습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