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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연수생활1 – 뉴욕에서 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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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뉴욕에서 연수 생활을 막 시작하고 있는 조선일보 신용관입니다.

저는 집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난 8월 6일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당연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주변 분들이 뉴욕에서 집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언 반(反) 협박 반을 했었습니다만, 그러려니 했었지요.

데마레스트, 크레스킬, 리지우드, 리버에지, 클로스터, 테너플라이, 알파인, 팰리세이즈 파크, 파라무스. 맨해튼 서쪽에 위치한 뉴저지(New Jersey)주의 버겐(Bergen) 카운티에 속한 웬만한 타운을 열흘 가량 샅샅이 훑으면서 깨달은 유일한 사실은 미국에서 적당히 품위를 유지하며 생활하려면 상당한 현금을 지불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 집을 내놓을 때는 ‘3 Bedroom, 2 Bath’ 식으로 방과 욕실의 개수로 집의 규모와 수준을 고지합니다. ‘1¹/₂Bath’는 욕실 하나가 변기와 세면대는 있으나 샤워 시설이 없다는 뜻이지요.

2007년 8월 현재 뉴저지에서 방 2개와 욕실 2개를 갖춘 집을 얻으려면 최소한 월 2300달러는 줘야 합니다. 1년이면 27600달러(약 2600만원)가 순전히 잠을 자는 비용으로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이런 집도 막상 가보면 지은 지 50년은 족히 되어 뵈는 아주 낡은 집이기 일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쥐가 나오는 집에 살 수는 없지 않느냐, 싶으면 2500달러 정도를 감수해야 하고 수준 있게 살겠다, 객기 부리면 3000달러를 훌쩍 넘겨야 합니다.

9월이면 각급 학교가 새 학기를 시작하는 탓에 8월에 집을 구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저의 경우 2400달러짜리를 간신히 찾아냈는데 계약하자고 했더니 하루 사이에 100달러를 더 올리더군요. 집주인이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부동산에 관한 한 한국인의 ‘투지’와 ‘배짱’은 국경을 초월하더군요.

초등학생 둘을 두고 있는 저 같은 경우는 집 구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학교 수준과 통학 거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현지에 와서 보니 좋은 공립학교를 보내기 위해 주거 공간을 옮겨 다니는 현상은 미국에서도 꽤 일반화되어 있더군요. 특히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www.greatschool.net’을 비롯한 각종 사이트에서 중ㆍ고교는 물론 초등학교까지도 등급을 매겨 놓고 있기에 ‘미국판 맹모삼천지교’는 나날이 보편화하고 있었습니다.

재학생의 인종 비율, 교사들의 학력, 학생 1인당 교육투자비 등등이 낱낱이 공개되어 있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이 비슷한 시도라도 했다면 과연 교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할 정도로 거의 모든 정보를 교육소비자(학부모와 학생)에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저 같은 한국인의 눈에는 ‘서열’로 여겨지지만, 미국인들에겐 단지 ‘facts’인 듯했습니다.

덕분에 이곳 여러 지역에서도 리지우드(Ridgewood)처럼 교육 환경이 좋은 곳은 집이 나오자마자 동이 납니다. 8월 초에 이곳 한인 신문 광고란에서 리지우드 집 3곳이 주인 한 사람에게서 렌트로 나온 것을 발견, 광고 게재 후 정확히 이틀 후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 사이 두 집이 이미 입주자를 구한 상태이더군요.
여윳돈이 많은 분이라면 이곳 집을 몇 채 사서 월세만 굴려도 매년 억대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역시 계약 직전에 저희 가족을 ‘물 먹인’ 데마레스트(Demarest) 남동향 집 소유주는 여기저기에 6채의 집을 가진 대만인 부부였는데, 말할 때의 몸 동작이 판타지 영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Lemony Snicket’s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의 짐 캐리를 닮은 ‘오버 맨’ 집주인의 직업은 우체부였습니다. 이 요란스러운 인간은 덜덜거리는 세탁기를 바꿔 달라는 우리 요구에 계약서 사인을 거부하더군요. 우리네 부동산 중개업자인 현지 리얼터(realtor)는 “집 보러 다니다가 열 받아서 아예 집을 사버리는 한국인들이 많다”고 귀띔했는데, 십분 공감합니다.

처자식의 지친 몸을 누일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흘 넘게 낯선 골목들을 돌아다닌 얘기를 다 하자면 고(故) 박영한의 ‘지상의 방 한칸’이 무색합니다. 결국 제 가족은 당초 예산을 훨씬 초과한 월 2800달러(1년이면 3150만원!)짜리 북동향 아파트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회사 선배 한 분이 “한 1억쯤 쓰겠다는 심정으로 지내다 오라”고 조언(?)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어쨌든, 저로선 뉴요커가 될 거점을 어렵사리 마련한 셈이지요. 포트리(Fort Lee)에 있는 이 아파트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인근에서 유일하게 개를 키울 수 있게 한 아파트여선지 뉴저지주에서 개 키우는 인간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으며,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개를 싫어해본 적이 없는 제가 이 집단 거주지에 산 지 보름 만에, 적어도 아무데나 오줌을 갈기지 않는 고양이의 옹호론자가 되었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미국까지 와서 영어도 아니고 음식도 아닌, 개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리라곤 정녕 꿈에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게 그 몹쓸 뉴욕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 때문이라니.

한국의 전셋집,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어차피 1~2년 지나면 고스란히 돌려 받는 돈이니, 마음에 드는 동네에 깔끔한 집을 골라 충분히, 부담 없이 즐기시길. 미국인들은 흉내도 못 낼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