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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생활 정착기5- 국제결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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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국제결혼, 커가는 이민 1세대의 고민



^뉴욕 맨해튼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이모(62)씨.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던 1970년대 초 뉴욕에 정착했다. 자신은 전공을 살려 무역업체를 차렸고, 아내는 소규모 가게를 운영했다. 부부가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있다. 딸만 둘이 있는 이씨는 한국인 사위를 맞으러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큰 사위는 중국인, 둘째 사위는 유태인이다. 이씨는 “컴퓨터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첫 사위는 재벌이나 되는 양 거들먹거리는 스타일이어서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둘째 사위 역시 딸에게는 잘 해 주지만, ‘웃어른’을 모실 줄 몰라 정이 안 가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큰 딸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중국인과 결혼하자, 이씨 부부에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작은 딸만은 반드시 한국인과 결혼시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는 것이다. 유태인과 사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읍소와 협박을 반복하며 딸에게 매달렸다. 그 결과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한국인 의사와 선을 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우격다짐으로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 하지만 딸의 고집을 완전히 꺾지는 못했다. 몇 차례 데이트를 하는가 싶더니만, “내 타입이 아니다”라며 교제 중단을 선언한 뒤 유태인과 결혼해 버렸다.



^이씨는 요즘도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 잔 걸치면 “사위들을 앞에 앉혀 놓고 소주잔 기울이며 오순도순 얘기하는 재미도 못 느끼고 인생을 마감한다 생각하니 너무 서글프다. 이제는 은퇴할 나이도 됐고 아들이 없어 내 사업을 물려 줄 한국인 사위를 바랬는데..”라며 허탈해 한다.



^이민 1세대는 대부분 한국인 며느리, 한국인 사위를 원한다. 말이 통할 뿐더러, 한국적인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손자, 손녀를 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대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겉모양만 한국인이지, 생활문화와 사고방식은 100% 미국인이라고 봐야 한다.



^이씨 둘째 딸의 얘기를 들어보자.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만나보긴 했지만, 한국 남성과 살면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겠더라구요. 딱딱하고 권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여자를 배려하는 마음도 많이 부족하구요.”



^뉴욕에서 태어난 김모(25 대학원생)씨도 캠퍼스 커플인 미국 여성과 결혼할 생각이다. 김씨는 “이 곳에 유학 온 한국 여성들을 보면 자기 표현에 솔직하지 못하고 외모에만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겠지만, 마음이 통하는 미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



^이민 1세대 부모들은 미국식으로 자란 자녀들이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면서도, 사위, 며느리와 한국적인 돈독한 정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