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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생활기55(초콜릿과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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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단 음식’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일상적으로 먹는 아이스크림, 쿠키, 소다수, 케이크 등 ‘설탕 범벅’을 이룬 음식이 한 둘이 아니다. ‘뚱보’가 많은 것도 이런 음식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당연히 초콜릿도 좋아한다.

^미국인들이 매년 소비하는 초콜릿은 무려 20억 파운드(9억kg)에 달한다고 한다. 1인 당 연간 10kg의 초콜릿을 먹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1998년 영국의 제과회사 발표). 이 번 밸런타인 데이(Valentine’s Day : 2월14일)에도 미 전역에서 10억 달러(한화 약1조3,200억 원) 어치 이상의 초콜릿이 판매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초등학생인 연정이와 원석이도 초콜릿 쇼핑을 해야 한다. 밸런타인 데이 때 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행 때문이다.

^초콜릿은 오래 전부터 성적인 쾌감을 높여주는 일종의 ‘최음제’로 인식돼 왔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음료, 화폐 등으로 이용하던 초콜릿(카카오 열매 안에 박힌 달콤한 씨앗을 갈아만든 원액)이 유럽에 전파된 것은 1502년. 위장병과 정력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류층에 급속히 확산됐다.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은 ‘단식 중 초콜릿을 먹을 수 있나’라는 문제를 놓고 250년간이나 논쟁했다. 종교에서 단식의 목적은 음란한 욕망을 없애는 것인데, 초콜릿을 마시면 성적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밸런타인 데이가 다가오면서, 뉴욕의 언론들은 초콜릿과 섹스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연구결과를 잇따라 소개하고 있다. ‘psychadviceline.com’을 운영하는 심리학자 제프 가디어는 “최근 연구결과 초콜릿에 들어있는 400여 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우리 마음 속의 ‘기쁨 중추(pleasure centers)’를 자극, ‘즐거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감정은 오르가슴 때 느끼는 기분(orgasmic feeling)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식물학자 더글러스 델리는 “초콜릿 안에 있는 ‘복합 페닐씰래민’이라는 성분이 흥분제 역할을 하며 뇌의 특정 부위에 대한 혈액 공급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했다.

^초콜릿은 건강상 이점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자들은 초콜릿을 먹으면 여성의 젖 분비량이 늘어나고 신장결석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심장병 예방효과도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의사들은 하루 3~4개 이상의 ‘판초콜릿(chocolate)’을 먹는 사람은 ‘초콜릿 중독’의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초콜릿 중독은 마약 중독과 마찬가지로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한때 초콜릿 중독에 빠졌던 뉴요커 루스 사드(여)씨는 “초콜릿 복용을 줄이기 위해 최면요법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최근 당뇨병이 발견된 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뇨 환자용 초콜릿을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 가족도 뉴욕에 온 뒤 초콜릿 섭취량이 크게 늘었다. 새알 초콜릿, 판초콜릿, 초콜릿 쿠키, 초콜릿 아이스크림, 초콜릿 케이크 등등 도처에 초콜릿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초콜릿이 ‘사랑의 상징’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음 효과로까지 연결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사랑의 감정을 북돋우는 장식물’ 정도로 여기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