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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생활기52(초등학교 교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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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초등학교는 신학기 초 학부모들을 초청, 담임 교사가 자신의 연중 학습 계획을 설명하는 ‘curriculum conference’라는 행사를 연다. 이 모임에 참석하느라 지난 학기초 ‘엘리스 오스틴 스쿨’ 1학년에 다니는 원석이 교실을 방문했다. 참석 학부모는 15명 정도. 학생들은 컨퍼러스가 열리는 동안 다른 교실에서 미술, 체육 등 예체능 관련 수업을 들었다.

^교실을 둘러보니 컴퓨터가 놓여 있는 담임 교사의 큰 책상 외에 모두 21개의 어린이 책상이 옹기종기 배열돼 있었다(유색인종의 비율이 적은 섬 지역이라, 흑인 1명, 동양인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백인 학생이라고 했다). 큰 교실에 학생수가 적다 보니 수업 내용에 따라 책상을 마름모꼴이나 원형 등 자유자재로 배치할 수 있을 듯 했다. 교실 한쪽에는 수백 권의 동화책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이 있고, 벽에는 세계 지도와 각종 그림 도표가 빽빽했다.

^학부모들은 장난감 처럼 귀여운, 학생들 의자에 앉아 담임 교사의 설명을 경청했다. 담임인 산티모로 여사(Mrs. Santimauro)는 우선 과학, 쓰기, 수학, 읽기, 어휘, 문법 등의 순으로 1년간 배울 교과서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 공공 도서관 이용과 도서관 카드 만드는 법, 학교의 연례행사 등을 자세히 안내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숙제 공책을 하나씩 보여주며, 숙제 지도 요령을 설명했다. 그녀는 “초등교육은 교사만의 힘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학부모와의 협동 작업이 필수적이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말했다.

^교실을 나오면서 칠판 위쪽을 올려다 보니,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실의 ‘급훈(級訓)’처럼 ‘우리의 다짐(Our Promise)’이라는 제목의 글이 적혀 있었다. “1. Be Polite 2.Sit Quietly 3. Raise Hands 4. Listen Carefully 5. Follow Directions 6. Do your Best”

^미국 초등교육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질서 중시교육’이라고 답하겠다. 개구장이인 원석이는 보름에 한 번 꼴로 선생님의 ‘경고 편지’를 들고 온다(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그리 ‘심각한’ 내용은 아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돌아다닌다. 복도에서 뛰어다닌다. 동료들과 다툰다” 라는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라면 ‘사내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행동인데도, 여기서는 절대 용서하는 법이 없다.

^두세 번 편지나 전화를 해도 시정되지 않으면, 학부모를 직접 학교로 부른다. 좀더 진지하게 ‘가정지도를 철저히 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교장의 호출을 받았다. 4학년 언니들이 강당에서 연주회를 하는데, 원석이가 같은 반 친구와 심하게 다퉈 음악회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잔뜩 긴장해 학교를 방문했다. 그런데 교장은 “원석이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줄 잘 안다. 긴밀하게 협조해 학교생활에 빨리 적응하도록 노력하자”며 오히려 우리 부부를 따뜻이 위로하는 것이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부터 ‘질서’와 ‘원칙’이 몸에 배도록 철저히 가르치는 초등교육의 힘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