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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생활기21(선정적인 상업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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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정에선 케이블TV 설치가 기본인 모양이다. 옵션에 따라 쇼나 포르노 등의 채널을 추가하느냐 마느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가정이 케이블TV를 시청한다. 우리는 케이블TV를 신청하지 않았다. 월 수십 달러를 내야하는 것도 싫었지만,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공중파 방송에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프로그램이 넘치는데, 수십 개의 오락 채널이 추가되면 어찌 감당할 것인가.

^뉴욕에서 시청 가능한 공중파 방송은 CBS, NBC, ABC, FOX, UPN, PAX등 10여 개가 된다. 짧은 체류 경험이지만, 미국 방송에는 자극적인 소재의 토크쇼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UPN은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보기가 민망스럽다. ‘제니 존스(jenny jones)’와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라는 프로그램은 특히 가관이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지 않은 평일 오후와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여자 진행자의 이름을 딴 제니 존스 쇼에는 주로 ‘야한’ 여성들이 출연해 신변잡담을 늘어놓는다. 돈을 벌 목적으로 몸을 파는 10대 소녀, 유방이 큰 여성, 모피와 보석을 얻기 위해 수천 명의 남성과 관계를 맺은 여성, 섹시한 춤을 잘 추는 여성 등등. 오늘의 이야기는 ‘Sexy Dancers Nocut’. 토플리스 바(Topless Bar)나 나이트클럽에서 스트립 쇼(Strip Show)를 하는 무희 6~7명이 출연해 자신들의 생활담을 펼쳤다.

^올해 17세인 리자(Lija). “꿈은 변호사였지만, 너무 오래 공부해야 하고, 돈도 많이 들어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12분 걸리는 스트립 쇼를 밤새 20번 공연한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하루 200달러. 리자는 이 돈으로 차를 사고 집도 렌트했다. 함께 방송에 출연한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생계를 위해 옷을 벗는 것은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딸이 돈에 너무 집착한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이들의 대화 중간중간, 카메라 앵글은 밤무대에 선 리자의 벗은 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스트립 댄서의 낮과 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명목이다. 토플리스(유두만 흐리게 지웠다) 차림으로 성행위를 묘사하는 모습과 남성 고객들이 팬티에 달러를 집어넣는 장면이 여과없이 방영된다. 고객과의 인터뷰도 이어진다. “리자는 너무 예쁘고 섹시하다.”

^아들이 하나 있는 20대 여성 안젤라(Angela). 잡지의 사진모델로도 활동 중인 그녀는 최근 남편과 헤어졌다. 쇼를 그만 두라는 남편의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젤라는 ‘댄서’라는 직업을 부끄러워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클럽 지배인도 출연해 “스트립 쇼는 직장인들이 피로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락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논쟁을 유도하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야한 화면과 웃고 떠드는 참석자, 환호하는 청중만 있을 뿐이다. 벌건 대낮에 공중파가 이런 프로를 내보내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지만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들이 공중파를 탄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는 게 이 곳 분위기다. 그저 개인의 선택에 맡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