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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생활기17(강아지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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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인근 쇼핑몰에 있는 ‘코스코(Costco)’(국내에도 같은 이름으로 진출해 있는 대형 할인점)에 다녀 왔다. 정문 옆에는 월드 트레이드센터 테러사건 희생자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기부용 물품을 파는 코너가 있었다. 그런데 코너 중심부에 엉뚱하게도 개 먹이가 잔뜩 쌓여 있지 않은가. 종업원에게 “웬 개먹이냐”고 물었더니, “테러사건으로 주인을 잃은 개들이 많이 생겨 개 먹이를 기부하는 시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TV에서 개 먹이를 구호본부에 기탁하는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방영됐던 기억이 난다. 어떤 할머니는 “주인 잃은 개가 불쌍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개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다.



^개인주의가 너무 팽배한 때문일까. 미국인들은 애완동물, 특히 개를 끔찍히도 좋아한다. 개를 키우지 않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산책을 할 때는 물론이고, 여행을 가거나 쇼핑을 할 때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인지, 거리 곳곳에는 “개 똥을 치우지 않으면 1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개에게 유산을 물려줬다는 해외토픽감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한국인 이민자들도 개를 많이 키운다. 이민 생활 10년째인 이모(36)씨는 “이 곳에선 여가생활이 철저히 가족 위주로 진행된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한국에서와 같은 끈끈한 인간관계를 기대하긴 어렵다. 나름대로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외로움을 타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잘 따르는 개를 많이 키우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와 친분이 있는 한 한국인 가정은 개 두 마리를 기른다. 이름이 ‘샤샤’와 ‘테디’인 이 개들을 가만히 지켜 보노라면, 웬만한 사람 팔자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암컷인 샤샤에겐 사람 못지 않게 돈이 많이 들어간다. 샤샤는 생리에 따른 불편을 없애기 위해 난소 제거수술을 받았고, 췌장에서 소화효소를 분비하지 못하는 병이 생겨 췌장 수술도 받았다.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 먹이는 지방질이 적은 특수 사료(가격이 일반 사료의 2배)만 쓴다. 최근 샤샤에게 들어간 돈만 2,0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집 주인은 개만 보면 마냥 ‘내 새끼’를 연발하며, 입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가게를 운영하는 그의 대답 역시 이씨와 비슷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장성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매일 얼굴 보기도 힘들다. 하루 종일 가게에서 시달리다 돌아오면 반겨주는 이는 샤샤와 테디 뿐이다. 개마저 없다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