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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후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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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이 ‘아메리카’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북미 못지않은 넓은 대륙에 원주민(1만년전 아시아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북미와 남미에 정착한 아시아인들이라는 것이 학계의 추정입니다.)과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이 섞여 살고 다양한 혼혈인종을 만들어 냈습니다. 페루나 볼리비아에서는 한국의 시골마을에서 만난 일가 친척과 너무도 닮은 모습을 한 원주민을 만날 수 있는데 왠지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지만 나머지 지역은 모두 스페인어를 쓰죠. 영어가 잘 통하지 않고 남미 고유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카’라고 통칭하기보다는 북미와 남미로 나눠서 부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달 표면을 닮은 모래사막, 산페드로데아타카마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의 투어를 마치면 칠레와의 국경에 다다릅니다. 대부분 여행자는 우유니로 돌아가는데 칠레쪽으로 넘어가는 여행자도 있죠. 국경을 넘어서면 칠레 북쪽의 대표적 지형인 아타카마 사막을 만나게 됩니다. 중동의 모래 사막이나 볼리비아 우유니의 소금 사막과 달리 자갈과 흙으로 구성된 지형인데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아 그저 사막(사진 17 참조) 이라 불립니다. 산페드로데아타카마(줄여서 산페드로라고 합니다)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나무가 자라고 물을 구할 수 있어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17]

산페드로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달의 계곡’이라고 알려진 사막지대가 나타납니다. 침식을 통해 생겨난 지형이지만 얼핏 보면 미국의 달 탐사선 아폴로호가 사진찍었던 달의 표면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렇게 불리죠. 군데 군데 동굴도 있고 예전에는 이곳에서 암염을 채취했다고도 하네요. 석양이 비칠 무렵이면 모레언덕이 분홍빛으로 물든다고 해서 사진작가들이 매일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사진 18, 19, 20)



[사진 18]



[사진 19]



[사진 20]

산페드로에서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로 향했습니다만 예전에 방문했던 곳이라 많이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별로 올릴만한 사진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빙하와 호수의 나라,엘 칼라파테

칠레에서 곧바로 찾아간 곳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빙하를 만날 수 있는 엘 칼라파테입니다. 안데스산맥이 만든 고원 지형은 높게 솟은 산과 함께 빙하를 만들어냅니다. 빙하라고 하면 보통은 북극이나 남극을 떠올리게 되는데 눈이 얼어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된 것을 모두 빙하라고 지칭하기 때문에 높은 고원지대에서도 빙하를 볼 수 있습니다. 엘 칼라파테는 인근에 여러 개의 빙하에 접근하기 쉬워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 입니다.

대표적인 빙하인 페리토모레노는 빙하들 가운데서도 가장 속도가 빠르고 규모가 비교적 커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이슬랜드의 빙하는 1년에 2cm 움직이는데 비해 페리토모레노 빙하는 하루에 2m씩 이동합니다. 산 위에 내린 눈이 얼음이 된 이후에 계속 쌓이는 눈의 압력과 지구의 중력때문에 산 아래쪽으로 조금씩 밀려내려오게 됩니다. 사진(사진 21)을 보시면 멀리 산 위에 내린 눈이 얼음으로 바뀌고 이어 거대한 빙하가 되어 밑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21]



[사진 22]



[사진 23]

빙하의 크기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은데 빙하 위를 줄 지어서 트래킹하는 사람들의 모습(사진 22)이나 80여명을 태우고 호수를 건너 빙하 바로 앞까지 접근하는 보트(사진 23)와 비교하면 그 거대함을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페리토모레노 빙하의 길이는 약 35km이고 높이는 60m 정도인데 100m 높이까지 얼음덩어리가 생성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압력이 가해져서 생긴 빙하의 얼음은 기포가 적고 투명도가 높아서 푸른 빛만을 반사하고 다른 색은 모두 흡수해버린답니다. 때문에 빙하는 푸른 색으로 보이게 된다는군요.

산 위에서부터 밀려 내려온 빙하는 호수 가장자리에 다다르면 따뜻한 기온과 호수의 물 때문에 녹으면서 균열이 생겨 조각조각 호수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를 빙하의 붕락(일본식 용어인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부르는 지 모르겠네요.)이라고 합니다. 두개의 사진(사진 24와 25)을 보시면 멀리 가장자리 끝부분이 조금 깨져서 호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운이 없어서 거대한 붕락을 보지는 못했지만 큰 것은 마치 벼락치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기위해 전망대를 설치하고 카메라에 이를 담고자 끈기있게 기다리죠.



[사진 24]


[사진 25]

떨어지는 빙하의 모습은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지금 제 눈앞에서 떨어져내리는 빙하는 사실 제가 태어나기도 이전인 약 50년전에 저 산위에 내린 눈이었던 셈이죠. 대자연의 생동감 넘치는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둥바둥 산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게 만들죠.

◆트레킹의 즐거움, 엘 찰텐

엘 칼라파테와 엘 찰텐은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의 대표적 관광지입니다. 엘 칼라파테에서 빙하를 만끽한 관광객들은 엘 찰텐으로 이동해 빙하탐험을 계속하죠. 엘 찰텐에는 피츠로이라 불리우는 산이 있는데 높이는 3405m로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보다도 낮지만 지형의 특성상 빙하와 짙은 안개를 만들어내 신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엘 찰텐에서 피츠로이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평탄해서 트레킹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사진(사진 26)을 보시면 저 먼 곳에서부터 트레킹을 해서 산 가장자리까지 다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군데 군데 광활한 팜파스의 평원과 호수, 다양한 식물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국적인 풍경이 볼만하죠.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오는 개천과 호수의 모습도 푸른 색을 띠고 있는데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독특한 색깔을 자랑합니다.



[사진 26]

피츠로이산 근처에 다다르면 우뚝 솟은 봉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멀리 칠레 방향에서 불어온 따뜻한 공기는 피츠로이산에 다다르면 세찬 기류가 형성되고 공기덩어리가 모여 하얀 구름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산 정상이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것과 같다고 원주민들은 ‘연기를 내뿜는 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산 중턱까지 오르면 거대한 호수와 빙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사진 27) 호수의 물빛이 너무도 진한데다 물 위로 비치는 산의 모습이 보기 좋아 사람들은 하루 8시간 거리의 트레킹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진 27]

◆열정과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미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98%가 유럽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이주한 유럽계 정착민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유럽풍의 도시로 만들었죠.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남미의 파리’로 불리우는 이유입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르헨티나는 세계 4대 부국에 속할 정도로 부유함을 자랑했지만 지금의 경제적 위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광활한 팜파스 평원에서 목축과 농업으로 이룩한 부를 제조업이나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로 잇지 못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랜 군사독재와 정치적 부패가 빚어낸 비극이죠.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부인 5월광장 옆에는 대통령이 거주하는 카사로사다가 있습니다.(사진 28) 카사는 집, 로사다는 분홍빛이라는 뜻인데 벽이 분홍색으로 칠해져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지금도 열렬한 신봉자가 있는 페론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에는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아내였던 에바 페론(에비타)이 2층 발코니에서 광장에 집결한 국민들을 향해 연설을 하기도 했답니다. 포퓰리즘의 대표격인 페론 정권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었는지는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당시 국민들은 광장에 모여 ‘에비타’를 연호했다고 하네요. 미국의 팝 가수 마돈나도 영화 에비타에 나오는 장면을 이곳 카사로사다에서 찍었다고 하네요.



[사진 28]



[사진 29]

광장 한쪽에는 아직도 ‘5월광장 어머니회’의 천막과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사진 29) 군사독재 시절 ‘더러운 전쟁’ 때문에 실종된 자녀들을 찾으려는 어머니들은 민주화가 이뤄진 지금도 이곳에 나와 자녀들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답니다. 3백만명에 달한다는 실종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또한 탱고로 유명하죠. 어둠이 깊어지면 시작되는 탱고의 열정은 새벽까지 계속 된다고 합니다. 거리에서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나이 지긋한 분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에 반해서 짧은 일정으로 관광왔다가 탱고를 배우기위해 장기체류하는 한국인들도 많다고 하네요. 대표적인 탱고 카페로는 ‘카페 토르토니’가 유명하지만 장국영과 양조위가 동성연애자로 출연해 주목을 끌었던 영화 ‘해피 투게더’의 무대였던 ‘바 수르’에도 관광객이 몰린다고 하네요. 아쉽게도 제가 찾아갔을 때에는 문을 열지 않아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새벽까지 탱고를 추는 시민들을 위해 버스가 24시간 다닌다고 하네요. 추락한 아르헨티나 경제에는 춤바람도 한 몫한 것일까요.

◆거대한 물의 축제, 이과수폭포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파라과이가 국경을 마주하는 지역에는 약 4km에 걸쳐 최대 낙차 80m짜리의 폭포가 300여개 모여 있는 이과수폭포(사진 30)가 있습니다. 북미 대륙의 나이가라폭포 및 아프리카대륙의 빅토리아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다른 두곳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예전에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고는 “불쌍한 나이아가라”라고 탄식했다고 알려져 있죠.



[사진 30]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개별 폭포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반면 이과수강 건너 브라질쪽에서는 폭포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노라믹하게 볼 수 있죠. 워낙 커서 카메라의 한 앵글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아르헨티나 측에서는 가장 큰 폭포인 ‘악마의 숨통’(사진 31)을 볼 수 있는데 반원형의 지형 가운데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두려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마치 제가 폭포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죠. 이과수폭포는 영화 ‘미션’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사진 31]

강 하류에서는 작은 보트가 사람들을 싣고 폭포 바로 직전까지 접근합니다.(사진 32) 아르헨티나쪽에서 운영하는 보트와 브라질쪽에서 운영하는 보트가 각각 달라서 자기네 영토쪽에 있는 폭포로만 안내한다는 점이 특색이죠. 강 하류 산마르틴섬에서는 일광욕을 즐기거나 수영을 하기도 합니다.



[사진 32]

◆남미의 뉴욕, 상파울루

한 나라에서 수도와 대표적인 관광지 한곳씩을 둘러보기로 했지만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행정도시여서 볼만한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마치 한국에 곧 들어설 세종시에 관광객이 갈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대신 남미 대륙 최대의 도시인 상파울루를 둘러봤습니다. 브라질의 영토는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미국보다 크다고 합니다. 브라질 최대의 도시인 상파울루는 그래서 미국의 뉴욕과 대비되고는 하죠. 7개 채널의 TV방송국과 13개 채널의 라디오방송국 등이 위치한 탓인지 고층건물 위로 안테나가 무수히 설치되어 있습니다.(사진 33) 금융의 중심지인 파울리스타 대로(사진 34)는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대비되고 에디피시오 마티넬리 빌딩(사진 35)은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흡사합니다.



[사진 33]



[사진 34]



[사진 35]

대표적인 기차역인 줄리오 프레테스역(사진 36) 역시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역과 펜실베니아스테이션역을 본떠서 건물을 지었다고 하네요.



[사진 36]

상파울루는 또 일본을 제외한 세계 모든 곳 가운데 일본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노예제를 폐지한 브라질은 모자라는 노동력을 보충하고자 일본과 협정을 맺고 이민을 받아들였다고 하네요. 대표적 동양인 거리인 리베르다지 광장 주변에는 일본풍의 가로등(사진 37)이 눈길을 끕니다.



[사진 37]

브라질 사람들은 축구 얘기를 꺼내면 모두 반겨합니다. 그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죠. 본고장 축구를 관람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더니 브라질인들의 열광적인 응원 모습(사진 38)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38]

* 위 글과 관련해 궁금한 점 있으면 메일(redael@hankyung.com)로 연락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