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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별로 살펴보는 미국 정착기1 – 난이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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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별로 살펴보는 미국 정착기 – 난이도 상 : NC에서 집 구하기, 유틸리티 서비스 신청

3월 LG상남언론재단의 연수생이 된 기쁨을 만끽한 것도 며칠 뿐, 어느 샌가 걱정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간 하와이나 괌, 사이판 등의 여행을 제외하곤 미국 땅을 밟는 건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20년 전의 경험이라고 해봤자 대학생 때 호기 하나로 좌충우돌했던 한 달 간의 배낭여행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면서 이 걱정은 현실이 됐다. 난관에 봉착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회사 일과 연수 준비를 병행하면서 가끔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미국 정착이 끝난 지금, 이제껏 거쳐온 과정을 생각하면 필자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후임 연수생들은 필자 같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실수를 덜 하려는 취지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NC)주 정착에 필요한 일들을 난이도 별로 분류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단순한 미국 여행과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연수생으로서의 미국 체류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집 구하기 <난이도 ★★★★★>

필자가 가는 듀크대학교는 더럼이란 도시에 있지만 연수생들은 대부분 채플힐(CHAPEL HILL)이나 캐리(CARY)라는 도시에서 지낸다. 이 2개의 도시는 NC 지역 내에서 치안이 상당히 좋고, 학구열도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듀크대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모두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연수생들과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한다.

필자가 주목한 곳은 캐리였다. 구옥이 많은 채플힐과 달리 캐리는 신축 단지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신도시 정도로 생각하면 편하다. 특히 학교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다. 캐리는 웨이크카운티(WAKE COUNTY)에 속해 있는데, 이곳의 시스템은 ‘이어 라운드(Year Round)’라고 불리는데 상당히 특이하다. NC 다른 카운티의 초등학교는 미국 대부분의 학교들처럼 8월 중순이나 하순쯤 개학을 하고 다음 해 여름이 찾아오면 엄청나게 긴 방학을 맞이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어 라운드 초등학교들은 개학일이 7월 초부터 8월 초까지로 나눠져 있다. 보통 각 학년마다 4개 트랙이 있는데, 각 트랙별로 학사 일정이 다르다. 6~8주 수업 후 3주 방학을 하는 식이다. 그래서 미국 다른 대부분의 학교들처럼 긴 여름방학은 없다. 대신 수시로 3주간의 방학이 찾아온다. 성수기를 피해서 여행을 다니고 싶은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필자는 신축을 선호하는데다 미국의 성수기를 피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점에서채플힐보다는 캐리 지역에서 집을 찾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2021년 여름 미국 NC로 떠나야 하는 필자의 상황이 이전의 연수생들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연수생들은 기존 연수생들의 집을 인계받는 방식으로 집을 구한다. 상당히 쉬운 편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코로나19 탓으로 2020년 연수를 떠난 국내 기자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연수생이 아닌 다른 재미 한국인, 아니면 미국인들에게서 직접 집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냥 뭐 하면 잘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정말 바보 같은 것이었음을 초반부터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 어느 지역이든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필자는 우선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집을 구하려고 했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고 연락을 기다렸다. 집을 넘긴다는 글이 올라오면 즉시 연락을 취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의 상황은 예년과 완전히 달랐다. 집을 넘기려는 사람은 예년보다 훨씬 적었고, 집을 찾는 사람은 배 이상으로 많아진 분위기였다. 2020년 연수를 오지 않은 세계 각국의 모든 연수생들이 2021년에 이곳으로 오려고 했던 탓이었다. 집을 필자에게 넘기겠다는 연락은 전혀 오지 않았고, 집을 넘기고 싶다는 글을 카페에 올린 사람들에게 연락했지만 서로의 니즈가 전혀 맞지 않았거나, 무시당하는 -답메일이 오지 않는- 일도 많았다.

2~3주 정도 한 발짝도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필자는 전략을 바꿨다. 미국인들이 집을 찾는 사이트와 앱을 통해 직접 집을 구하려고 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이트는 질로우(zillow.com) 리얼터닷컴(realtor.com), 아파트먼트닷컴(apartments.com) 등이 있다. 필자는 이 3곳에서 필자의 니즈에 맞는 지역에 있는 매물들을 검색 후 집을 관리하는 리얼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메일을 5통 정도 보내면 답메일을 받을 확률이 1통 정도였다는 점이다. 돈을 내고 그 집에 입주하겠다는데 리얼터들은 왜 연락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현지에서 전화로 직접 문의하거나 아니면 사무실로 찾아오는 이들만 상대해도 충분히 고객이 많은 상황이었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메일을 보내 온 리얼터를 통해 가격과 렌트기간, 가족 수 등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면 정식으로 해당 집에 신청서를 내야 한다. 자신의 소득(급여 명세서, 재단의 후원 보증서), 자신의 재산(예금 현황), 자신의 신분(여권, 비자서류) 등을 증명하는 서류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돈이 나간다. 한국처럼 “제가 돈 드리고 계약할게요” 이게 아니고 무조건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신청서를 내는 과정에서 리얼터가 돈을 받는다. Application Fee라고 불린다. 적게는 50달러에서 100달러 이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한 가족이 신청서를 내면 가족수(아이 제외)에 따라 돈을 받는다. Application Fee가 70달러라고 가정할 경우, 가족 구성원이 4명(연수자, 부인, 아이1, 아이2)이라면 140달러를 내야 하는 식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정식으로 신청을 하더라도 퇴짜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집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리얼터는 Application Fee를 받고 신청서를 받는데, 리얼터와 집주인이 상의해서 원하는 세입자를 선택한다. 선택받지 못할 경우 Application Fee는 환불되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너무나도 황당한 일이겠지만, NC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무턱대고 신청을 하다 보면 허공에 수십만 원, 많게는 백만 원 이상을 날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필자도 적지 않은 돈을 낭비했다. 누가 나를 선택할 지는 알 수 없다. 참고로 메일을 주고받아서 필자에게 정식으로 렌트를 신청하라고 권유한 리얼터들은 모두 친절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필자가 미국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이런 문제는 아마 NC 지역 내에선 캐리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채플힐 지역은 이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어 라운드 학교는 정원이 정해져 있다. 현지에선 “캡된다”고 얘기하는데, 학교가 정원이 다 차면 그 학교로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어떤 집을 계약했는데, 그 집과 5분 떨어진 초등학교가 있어도 그 학교 정원이 찼다면 해당 학교로 아이가 등교하지 못한다. 전혀 엉뚱한 곳으로 배정돼서 그곳으로 다녀야 한다. 최악의 경우 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30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라운드 초등학교는 NC 내에서 인기가 많다. 그래서 필자가 학교를 알아볼 당시, 이어라운드 초등학교의 70% 이상이 캡된 상태였다. 한 마디로 집을 고른다 해도 캡이 안 된 30% 지역에 나와 있는 집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얘기였는데, 그러다 보니 그런 지역에 나온 집에 수요가 몰렸고, 역시 그러다 보니 허무하게 Application Fee를 날리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NC의 캐리로 오고자 하는 연수생이 있다면 누구도 필자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

결국 필자는 우여곡절 끝에 리얼터에게 ‘선택’을 받았다. 집을 구하기 시작한지 3달 정도가 흐른 뒤였다. 하지만 선택을 받았더라도 그 이후에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는 것을 선택을 받고 나서는 몰랐었다.

연수생들은 미국에서 신용점수가 아예 없기 때문에 현지 부동산 중개법인은 초반에 보증금을 많이 요구한다. 보통 2달치 월세를 미리 요구한다. 그런데 한국처럼 계좌이체를 통해 돈을 받는 곳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법인들은 보통 캐셔스체크(Cashier’s Check)나 머니오더(Money Order)라는 것을 요구한다. 캐셔스체크는 은행에서 발행한 정식 수표고, 머니오더는 수표처럼 쓰이는 화폐의 종류다. 이 2개 모두 미국 현지에서만 발행할 수 있다. 필자가 알아본 결과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또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비추한다. 코너에 몰린 필자가 “해외여서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그냥 계좌로 이체하면 안 되겠냐”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돈을 제대로 보내지 않으면 가계약은 바로 취소된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필자는 어쩔 수 없이 지인들을 수소문했고, 캐리에 사는 한 교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 지인은 얼굴도 모르는 필자를 믿고 자신의 은행으로 가서 캐셔스체크를 발행했고, 그 체크를 부동산 법인에 전달해 줬다.

마지막 남은 하나의 관문은 집 보험이었다. 리얼터는 필자에게 최종 계약 전 세입자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고 했고, 필자는 NC 카페를 통해 보험업을 하는 현지 교민에게 부탁했다. 미국인과의 계속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상당히 지친 상황에서 교민을 통해 일을 처리했는데, 원활하게 진행돼서 만족스럽다. 보험은 한국에서도 어렵다. 그냥 외국회사 직접 컨택하지 말고, 약간 비싸더라도 교민 통해 하는 것을 강추한다. 결국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필자는 미국 출국 1개월 전쯤 집 계약을 완성할 수 있었다. 미국에 가기도 전에 미국을 알게 해준 집 구하는 과정이었다.

유틸리티 서비스 신청하기 <난이도 ★★★★>

집을 구하고 나면 바로 해야 하는 것들이 유틸리티 서비스 신청이다. 미국의 집들은 한국과 다르다. 집을 계약해도 그 집에는 집만 있을 뿐이다. 전기, 가스, 수도, 인터넷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이 서비스를 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미국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없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머물러야만 한다. 미국에 들어와서 신청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미국은 한국처럼 신청 즉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다. 며칠이 반드시 소요된다.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가족과 머물러야 한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호텔에서 머무는게 낫다. 하지만 집세와 호텔비를 이중으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외국에 간 거 나는 돈을 쓰겠다는 연수생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이런 지출이 너무나도 아깝다면 반드시 한국에서 유틸리티 서비스를 완료하고 출국해야 한다.

유틸리티 서비스 역시 만만치 않다. 네이티브 스피커에 가까운 연수생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어학연수도 다녀오지 않고 한국에서만 학교를 나와 국내에서 기자로만 일한 대부분의 연수생들에겐 상당히 버거운 일이다.

캐리 지역에선 전기는 Duke Energy, 가스는 Dominion Energy, 수도와 쓰레기 처리는 Town of Cary에 신청하면 된다. 인터넷의 경우 AT&T, 구글, 스펙트럼 등 다양한 매체가 경쟁하고 있는데,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되는데 인터넷은 다소 복잡해서 가장 뒷부분에 쓰기로 한다.

우선 모든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 다만 미국에서 요구하는 신분 증명을 해야 한다. 미국 SSN 번호라든지 미국 운전면허번호가 있으면 좋지만 연수생이 그런게 있을리 없다. 그래서 외국인 신분으로 신청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 홈페이지에서 서비스 신청을 진행하고 있으면 막히는 부분이 반드시 찾아온다. 결국 콜센터로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오랫동안 쓰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 콜센터와의 전화 통화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필자의 말도 안 되는 영어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말을 천천히 해 주진 않는다. 인터넷 정보를 통해선 듀크에너지와 도미니언 에너지 모두 통역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한국인 통역을 불러달라고 하니 그런 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냥 영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화하는 게 좋다. 참고로 외국인이라고 처음부터 얘기했어도 콜센터에선 SSN 번호와 운전면허번호 등 미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대해 계속 물어본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응대하면 된다.

알아둘 점은 그나마 듀크 에너지와 타운 오브 캐리는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신청이 가능하지만, 가스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라는 점이다. 도미니언 에너지는 필자의 신분을 공증받아야만 신청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변리사나 전문 공증 기관을 통해 신분 공증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한국에서 공증을 시도하니 10만 원 정도의 공증료를 요구했다. 게다가 한국 공증 기관들은 도미니언 에너지에서 요구하는 서식으로 공증은 할 수 없고, 한국식으로 공증한다고 했다. 가스 신청 하나 하는데 이 정도의 돈을 내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데다, 혹여 비싼 돈을 들여 공증을 받았는데 도미니언에너지에서 해당 양식을 거부할 가능성도 상당해서, 현지 교민이 하는 공증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 20달러를 내면 공증을 한 스캔본을 받을 수 있다. 가스 공증이 필요하다면 그냥 현지 교민을 이용하는 게 훨씬 낫다. 이렇게 받은 공증 스캐본을 도미니언 에너지에 보낸 뒤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신청하면 서비스 신청이 완료된다.

필자는 두 곳 모두 입주 날짜 하루 전부터 서비스를 신청해 놨다. 입주날부터 신청할 경우 간혹 오전에는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는 정보가 있어 안전하게 하루 전부터 신청했고, 입주해서 무리없이 지금까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은 상술했다시피 복잡하다. 다양한 서비스가 있고, 회사마다 제공하는게 조금씩 다르다.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다만 필자의 경험으로만 보면 캐리 지역에서 SSN 번호나 운전면허번호 없이 한국에서도 인터넷 신청이 가능한 유일한 회사는 스펙트럼 뿐이다. 다른 회사는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다. – 이 부분은 계속 확인해 봐야 한다 – 이 점이 전기, 가스, 수도와 전혀 다른 점이다. 입주하면서부터 인터넷을 무리없이 쓰고 싶으면 스펙트럼을 이용하면 되고, 다른 회사가 더 좋으면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도 당분간은 인터넷 없이 살아야 함을 숙지해야 한다. 필자는 고민 끝에 스펙트럼을 선택하지 않고 AT&T를 선택했다. 문의 당시 스펙트럼은 월 60~70달러 정도였는데, AT&T은 페이백과 자동결체 차감 등 각종 혜택을 받아서 사실상 월 37달러 정도에 이용하고 있다. 다만 운전면허가 필수였던 만큼, 입국 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야 AT&T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나 더, 인터넷 회사들은 한국처럼 복합 상품을 많이 취급한다. 인터넷과 TV 결합 상품이다. 물론 TV 결합을 하면 당연히 상술한 가격보다 더 비싸진다. 필자의 경우 인터넷만 신청하고 TV는 신청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서 안테나를 사서 가져갔는데, 안테나가 지역방송 등 6개 채널을 수신하고 있어서 6개 채널만 보고 있다. 만화채널이 2개나 돼서 아이가 영어를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