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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박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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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박’ 도전기

캠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취미였다. 캠핑장에 북적이는 많은 인파와 주말 차량 정체, 고가 장비 구입이 부담가서다. 캠핑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 온 만큼 한국에서 할 수 없었던 캠핑을 원 없이 해보고 싶었다.

일단 차부터 짐 싣고 다니기 편한 미니밴으로 구했다. 한국에 귀국하는 사람들의 세간살이를 일괄로 넘겨받는 이른바 ‘무빙’ 구매 때도 캠핑 용품이 포함된 짐을 택했다. 그렇게 4인 가족용 캠핑 의자, 에어 매트리스, 버너, 그릴 등 최소한의 장비를 갖췄다. 하지만 어린 자녀까지 온 가족이 캠핑 초보인 만큼 텐트 구입은 뒤로 미뤘다. 텐트 치고 야외에서 자는 대신 미니밴 뒷좌석에 에어 매트리스를 깔고 자는 ‘차박’을 해보기로 했다.

9월 첫째 주 월요일은 미국의 노동절이다. 아이들 학교도 주말 포함 3일 연휴인 터라 이 기간에 첫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장소는 어바인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 중 하나인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택했다. 모하비 사막에서 자생하는 조슈아 트리가 많은 곳이다. 인근에 시설 좋은 캠핑장에 25달러를 내고 1박을 예약했다.

야생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므로 준비를 단단히 했다. 저녁에 구워먹을 고기와 야채, 샌드위치, 핫도그 등 간식거리, 밤에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한 장작과 구워 먹을 마시멜로와 고구마, 먹고 자고 씻을 물까지 잔뜩 차 트렁크에 실었다. 하룻밤 캠핑이었지만 짐만큼은 2~3일은 버틸 수준이었다. 출발 당일 점심을 먹고 캠핑장으로 향했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처음 보는 생경한 풍광에 아이들은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2시간 반 정도를 달려 방문자 센터에 도착했다. 지도를 얻고 인근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고 알려진 키스 뷰(Keys view)로 향했다. 장관이었다. 연수 오기 전 “미국은 대자연을 봐야 한다”고 했던 선배들의 말이 실감났다.

경치를 충분히 즐긴 뒤 차를 타고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캠핑장에는 큰 테이블과 캠프 파이어용 화덕이 설치돼 있었다. 짐을 내리고 고기를 구웠다. 밥을 다 먹어갈 즈음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캠프파이어를 위해 장작에 불을 지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시멜로를 구워먹는 기분은 정말이지 색달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캠핑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지평선 너머로 금새 사라졌다. 서둘러 정리하고 차 트렁크에 있던 짐을 앞좌석으로 옮겼다. 뒷좌석을 앞으로 최대한 밀고 에어 매트리스를 깔았다. 트렁크 문을 닫고 차안에 들어가 4가족이 누웠다. 선루프로 보이는 별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1시간 여 뒤. 차 안은 한증막으로 변했다. 사막의 밤은 춥다 해서 껴입을 옷가지를 잔뜩 가져간 게 무색해졌다. 당시 캘리포니아 전역은 낮 기온이 화씨104도(섭씨 40도) 이상 치솟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 밤엔 괜찮을 거라 생각한 게 패착이었다.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잤다. 부채질을 해도 더위는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차 시동을 걸고 온도를 확인해보니 화씨 92도(섭씨 33도). 밤 9시가 지나고 10시가 지나고 11시가 지나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모기, 나방 등 벌레가 많은 터라 창문은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선루프를 열고 벌레가 못 들어오게 가림막을 쳐 놨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틈틈이 시동을 걸어 에어컨을 켜 온도를 낮췄다. 하지만 시동을 끄면 금새 4명의 체온과 사막의 열기가 섞여 차 안은 다시 사우나로 돌아갔다.

자정을 넘기고 1시에 다다를 즈음 결심했다. 여기선 잠을 잘 수 없다고. 황급히 시동을 걸었다. 차에 불을 켜자 날벌레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야외에 뒀던 짐을 트렁크에 싣고 그 길로 집으로 달렸다. 심야시간 미국 고속도로 운전은 두려웠지만 5시간 이상 찜통 같은 차 안에서 가족들을 방치할 순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9월까지는 더워서 현지 사람들은 캠핑을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차박 하려면 보통 차량용 모기장을 설치한다는 사실도 뒤늦게야 알았다.

나의 첫 미국 차박 캠핑 도전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캠핑 로망은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준비를 더 한다면 내년 봄엔 캠핑을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뭐든 처음엔 서투른 법이니까.